한국 최초 근대식 운동회의 시작
조선반도에 개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1896년 5월 2일 이날 조선의 수도 한성에서는 ‘화류회’ 라는 이름의 낯선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화류’라는 놀이가 있었다. 봄과 가을에 이웃마을 서당끼리 요즘 운동회에 해당하는 화류 놀이를 벌였다. 종목은 필드하키 격인 ‘장치기’, 줄다리기, 릴레이식 바가지 밟기 등 이었다.
놀이에서 이긴 서당은 풍장을 치며 마을을 돌았는데 집집마다 떡 상을 차려 이들을 융숭히 대접했다고 한다. 화류회는 이 화류 놀이의 이름을 따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운동회 였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근대올림픽(1896년 4월6일)이 열린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이었다. 첫 올림픽에서는 마라톤(40.2km)을 필두로 100m, 110m 장애물, 높이뛰기 등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켜 육상이 올림픽의 꽃 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구 저편 조선인들에게는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로 여겨졌겠지만 말이다.
화창한 봄날 동소문 밖 삼선평(지금의 서울 성북구 삼선교 인근) 들녘 대회장 입구와 더른 공터 둘레 곳곳에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 학교 학생들의 소풍과 운동을 겸한 야외 놀이였지만 행사에 초청된 내빈과 삼삼오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 수백명이 자리를 메워 적잖이 성황을 이루었다.
장내가 정돈되고 학생들의 집단체조가 시작되면서 대회의 막이 올랐다.
학교 교장겪인 영국인 허치슨이 심판을 같은 나라 출신인 핼리팩스가 기록을 담당했다. 영국 공사관 서기관인 윌리스는 행사 진행을 맡았다.
경주의 길이를 걸음걸이 수로 정한 300보, 600보 달리기를 필두로 공던지기, 대포알 던지기(투포환)가 이어졌다. 멀리뛰기, 높이뛰기도 뒤를 이었다.
대부분 당시로서는 생소한 육상 종목이었지만 바야흐로 우리나라 육상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 이었다.
당시에 특이했던 것중 하나가 달리기 출발 신호였다.
우선 진행자는 검은 우산을 받쳐들고 출전 선수들에게 “제자리에 서옵시오” 라며 준비동작을 시킨다. 그런 다음 진행자가 우산을 아래로 잡아 내리면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는 식이었다.
당시에 선수 대부분이 양반 자제라 경어를 쓰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비록 한 학교 차원의 행사였지만 장안의 화제였던 만큼 <독립신문>도 체력 배양을 강조하며 첫 운동회 소식을 전했다.
당시의 <독립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영어학교 교사와 학도들이 이달 이튿날 동소문 밖으로 화류를 갔다니 오래 학교 속에서 공부하다가 좋은 일기에 경치 좋은 데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장부에 운동을 하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니, 다만 마음과 지각만 배양할 것이 아니라 조선사람들이 몸 배양하는 것도 매우 소중한 일이니 몸 배양 하는 데는 맑은 공기에 운동하는 것이 제일이요, 목욕을 자주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 ” <독립신문> 1896년 5월 5일